한국 영화의 황금기 1960~1980년대에 최고의 스타로 인기를 누린 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 병으로 긴 투병생활을 하다가 프랑스 파리 현지 시간 19일, 향년 79세로 별세했습니다. 남편 백건우씨는 윤정희 씨가 딸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며, 생전의 뜻에 따라 장례는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는 물론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 영화 인생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배우 윤정희 씨는 조선대학교 영문학과 재학 중에 신인 배우 오디션에서 선발돼 1967년 영화 청춘 극장으로 데뷔했습니다. 무려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에 발탁된 배우 윤정희 씨는 영화가 그해 최고 흥행을 기록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한해 40여 편에 출연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7년 동안 '시로의 섬', '눈꽃', '시' 등에 출연하며 약 300여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또한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각종 영화제에서 29번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연기 인생 절정기에 갑작스럽게 프라스 파리 유학길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유명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결혼하며 또 한 번 화제를 뿌렸습니다.
그 뒤론 줄곧 파리에 머물렀지만,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영화 '시'에 본명인 '미자'로 출연해 마지막 불꽃을 태운 배우 윤정희.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배우로서 활동은 중단했습니다.
2. 개인사
유학길에 오른 윤정희는 프랑스에서 남편 백건우를 만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과거 독일에서 작곡가 윤이상씨의 소개로 만난 바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재회한 백건우 씨는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윤정희 씨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윤정희 씨는 "프랑스 유학 시절 밥 먹으러 간 한인식당에서 백건우를 다시 마주쳤다."며 그와 천생연분일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5년 5월 윤정희씨는 가족으로부터 방치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영화배우 윤정희를 구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남편과 별거 상태로 배우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파리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알츠하이머와 당뇨와 투병 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근처에 딸이 살기는 하나 직업과 가정생활로 바빠서 자기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며 "혼자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감옥 같은 생활을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남편 백건우는 입장문을 통해 반박했습니다. 그의 소속사는 "몇 년전부터 윤정희의 건강이 빠르게 악화돼 여행길에 동행할 수 없게 됐다."며 "딸의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가족과 법원이 지정한 간병인이 돌보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주기적인 의사의 왕진 및 치료와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악의적인 게시글의 무분별한 유포 및 루머 생산, 추측성 보도 등을 더 이상 삼가시기를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21년 윤정희 동생은 백건우가 윤정희를 방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딸 백진희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하면 안된다고 표명해 왔습니다. 이후 후견인 자리를 놓고 양측은 법적 공방을 벌였습니다. 법원은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백진희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윤정희 동생은 재차 이의를 제기했고 대법원에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정희 씨가 사망함에 따라 성년후견인 소송이 종결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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